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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추미애 소개 > 왜 추미애인가?

가난과 힘겹게 살아가던 우리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의 세대, 동네어귀에 늘 자리잡고 있었던 세탁소집에서 추미애는 태어났습니다.

세탁소집을 하던 어린 시절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세탁물을 몽땅 잃어버릴지라도 신용을 중시하던 그녀의 부모님은 손님들의 옷값을 전부 배상해주고, 비록 빈털터리가 될지라도 그녀의 부모님들은 우리들의 부모처럼 돈보다도 더 큰 자산인 ‘신용’을 가르켜 주던 평범했던 우리의 이웃이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부의 대물림이나 특권의식으로 자라나지 않았기에 늘 우리와 어울리고 믿음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한양대 재학시절 만난 추미애와 서성환 두 사람의 사랑은 뜨거웠고, 서로를 격려하는 믿음의 동반자로 인연의 끈을 이어갔습니다. 두 사람은 사법시험에 서로를 격려하며 연이어 합격하는 동안에도 그 이후에도 7년 여간을 넘게 열애의 시간을 가졌지만 결혼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영남집안과 호남집안의 혼인이 흔지 않던 당시의 편견 그리고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불편한 서성환 변호사의 문제가 양가 집안의 많은 반대를 불러오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과 믿음앞에 이러한 문제들은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녀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었으며, 편견을 뛰어넘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적 양심’에 따라서만 판결을 내던 추판사는 서슬퍼런 공안정국하에 억울하고 무거운 죄명이 씌워져 잡혀 온 소위 시국사범이란 학생들을 곧이곧대로 처벌하기보다는 약식 기소나 훈방으로 풀어주기로 유명했습니다.

공안당국의 압력은 거칠었지만 부당한 힘에 굴복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당시 민주평화세력의 지도자이던 국민회의 김대중총재의 정치권 권유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후 뛰어난 의정활동 등으로 2004년 1월까지만 해도 월간지 조사 ‘국민이 뽑은 차기 지도자’ 1위를 달렸으나, 탄핵열풍에 총선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겪게 됩니다. 낙선 후 미국에 공부를 하러 가있는 동안 수차례 입각제의가 들어왔지만 50만 민주당 당원을 뿌리치고 혼자만 권력의 유혹에 편승할 수 는 없는 일이라 하여 이를 뿌리친 일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녀에게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살아있는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추미애가 판사의 길을 뒤로하고 들어 선 정치역정은 항상 소외된 자와 약자의 편이었습니다. 초선의원으로 첫해부터 그녀는 공안정국의 폭력성에 여학생들의 성추행사건을 당당히 폭로하고 수많은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했습니다.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변함없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그녀는 공권력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특검제 관철, 소비자 피해구제의 원활화와 국민안전을 위한 제조물책임제도의 도입들의 혁혁한 성과를 이루어 약자의 권익을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제주 4, 3특별법은 당초부터 우익집단의 반발과 반대여론을 겪으면서 통과가 어려웠던 전망이었으나, 이데올로기의 공세에 묻혀 인권침해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진상규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주소를 온 몸으로 부딪혀 이겨낸 이가 추미애입니다.

한 시대의 야만과 폭력에 대하여 그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특별법 제정은 지금 세계의 인권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며, 세계사에 진일보한 족적을 영원히 남기는 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으로부터 미래를 가꿔가는 이 또한 추미애입니다.

추미애는 15대 국회때 여성으로서 지역구는 어려우니 전국구로 나가라는 제의를 뿌리치고 당당하게 심판받겠다며 지역구 출마를 하였고,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주는 당직이 싫다"며 수석 대변인직을 고사하고 김대중 후보의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북에 내려가 잔다르크 유세단을 이끌었습니다. 도를 넘는 지역감정이 존재하던 그때, 당당하게 홀로 지역주의 벽을 넘던 그에게 추다르크라는 별명은 너무나도 어울리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남성이 주도적인 정치 문화의 한 복판에서 어느 누구의 후광도 없이 스스로 정도를 걸어 한 분야를 개척한 여성 정치인은 추미애가 최초이자 최고입니다.

추미애하면 강렬하게 떠오르는 이미지가 3보1배입니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선거대책의 지휘자로 전국을 누비다 들른 광주의 차가운 날씨에 그녀는 지친 심신으로 자신이 없었지만 ‘죽을지 몰라도 해야 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를 이겨 냈습니다 

그녀는 비록 대통령이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탄핵은 안된다고 주장하였지만 당의 결정에는 순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책임자들이 모두 사라진 민주당에서 그녀는 이를 회피하지 않고 책임질 방법을 찾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진정한 삼보일배 정신은 정치인이 당당하게 국민에게 사죄하는 것 뿐 아니라 지도자들에게도 책임져야 할 때는 이를 회피하지 말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햇볕정책은 튼튼한 안보태세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는 한편 북한이 스스로 변화와 개혁의 길로 나올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여 한반도 평화와 남북간 평화공존을 실현시키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하여,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남북간의 불법적인 뒷거래로 폄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평화민주개혁세력을 분열시킨 단초를 제공한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일관되게 햇볕정책의 효용성과 그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지지한 사람은 대통령을 말하는 사람 중에 추미애뿐입니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공조로 이라크에 우리 젊은이들을 파병할 당시에도 이를 반대한 평화주의자입니다. 국제분쟁지역으로의 파병활동이 오늘날 국제적 테러로부터 대한민국이 자유롭지 못한 결과가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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